32018.05.21 02:43




은총이 죽고 나서도 한동안 무선호출기 번호는 살아 있어서 상수는 은총이 없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을 때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곤 했다. 음성메시지를 남기려 하면 메시지가 가득 차서 더이상 녹음할 수 없다는 안내가 나오는 날도 있었다. 상수는 비밀번호를 눌러 거기에 남아 있는 목소리들을 들어보았다. 거기에는 은총을 기억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


마지막까지 메시지를 남긴 사람은 그 여자애였다. 그 메시지에서 여자애는 눈이 오네, 아무것도 할 일은 없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1분 가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여자애가 있을 공간 뒤편에, 철제문을 여닫는 소리와 자동차의 경적소리, 두런거리는 말소리와 지나가는 누가 큰 소리로 내는 야— 하는 외침, 그리고 여자애가 내는 숨소리만이 들리더니 끊을 때쯤 되어서야 미안해, 하고 겨우 한마디를 내놓았다.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그래서 눈을 먼저 네가 있는 곳에 보낼게.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달그락 소리가 나며 녹음이 종료되었는데 상수는 긴 침묵 끝에 여자애가 내놓은 그 말이 지금까지의 누구의 애도보다 슬퍼 오래도록 울었다. 




김금희, <경애(敬愛)의 마음>, 창비

Posted by days4tripper
12017.12.10 16:35



오랫동안 버려둔 이 블로그에 로그인 하려 하는데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로그인조차 하지 않았던 건지. 핸드폰에는 자동으로 로그인이 되어 있어 따로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탓도 있다. 핸드폰으로 아이디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6번이나 연속으로 입력한 비밀번호가 아이디와 일치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떴다. 4번만 더 실패하면 계정이 잠긴다고 해서 결국 비밀번호 찾기를 클릭. 아이디와 연결된 네이트 메일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다고 해서 네이트 창을 열었다. 또 한번 비밀번호 입력창 앞에서 머리가 하얘졌으나 다행히도 로그인을 하고 티스토리 비밀번호를 바꿨다. 사이트를 만든 놈들이 보안을 좀 더 강력하게 보완하는 방법보다 고객에게 주기적으로 비밀번호를 바꾸게 만드는 일이 더 싸게 먹히는 것인가... 매번 비밀번호를 이리저리 바꾸고 바꾸다보니 한 달에 몇 번이나 이런 일이 반복된다. 아주 사소한 일인데도 반복되니 짜증이 치밀기도 하고. 

어쨌거나 저쨌거나 무사히 로그인을 할 수 있었고 1년 반을 내팽겨쳐둔 블로그는 먼지와 거미줄이 겹겹이 쌓인 오래된 창고 같네. 큼큼한 먼지 냄새 마저 반가운. 

Posted by days4tripper
52016.05.17 03:18




1

전주영화제에 다녀왔다. 3년 만이었다. 아주 갑자기 결정을 했고, 영화표부터 예매했다. 가장 보고 싶었던 '본 투 비 블루'는 이미 매진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럭저럭 다른 영화들을 여섯편 예매할 수 있었다. 고속버스 표를 예매하고, 전주에 사는 작은 이모에게 며칠 뒤 내려가겠다고, 나흘 정도 머물 거라고 얘기했다. 

금요일 아침 버스를 타고 전주로 가 그 다음주 월요일 저녁에 올라왔다. 나흘 동안 매일 영화를 봤다. 첫 날에는 '여행의 끝', '우아한 나체들', '몽 루아'를 둘째 날에는 '휴먼'을 셋째 날에는 그 전날 아주 운 좋게 티켓을 구한 '본 투 비 블루'를, 마지막 날에는 '올드 데이즈'를 보았다. 

캄캄한 영화관 안에서 스크린 위에 영사되는 수많은 장면들을 보며 나는 이것이 생이었으면 생각했다. 내가 그저 망연히 지나가고 있는 이 시간들의 보잘것 없음을 그 시간 동안에는 깨끗하게 잊을 수 있었으니까. 이곳의 나는 너무도 작고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닌데, 그곳의 나들은 살아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고통도 미움도 슬픔도 사랑도 배신도 질투도 열심히 껴안으면서 분투하면서 눈물겹게 자신들의 시간을 촘촘하게 새겨나가고 있었다. 


2

나는 더이상 무기력의 이유를 생각지 않기로 했다. 또 어떠한 긍정의 말도 나에게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를 방기한 채로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미 그런 지 오래 되었지만.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는 나를 나는 고치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 부서지는지, 어떻게 망쳐지는지 두고 볼 것이다. 나의 한심함이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지켜볼 것이다. 나의 바닥이 어디인지를 가늠해볼 것이다.


3

결국은 불만을 껴안고 살거나, 불안을 이겨내며 살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불만과 불안, 둘 중의 어느 것과 손을 잡을 것인가의 문제. 


4

요즘 무엇보다 가장 슬픈 것은 엄마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도 오래 엄마에게 기생하고 있는 기분이다. 뱃속의 태아처럼 여전히 엄마의 영양분을 받아 먹으며, 엄마의 몸을 갉아 먹으며.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래도 늘 못 미친다. 절대, 결코 어떻게든 갚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엄마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 


5

최근 아주 자주 꾸는 꿈이 있다. 해외에 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고 공항에 갔는데 티켓 혹은 여권, 캐리어를 가져오지 않은 꿈이다. '중요한 무언가를 깜빡했다'라는 기본적인 틀 안에서 여러 상황으로 변주된다. 비슷한 꿈을 꾸고 깨어나면 내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 무엇을 잃어버린 건지 한참 생각한다. 




오늘의 잘한 일: 담이 결려서 고개를 제대로 못 돌릴 지경인데도 요가에 간 것.

오늘의 반성: 요가하고 와서 초코 롤케이크를 한 조각 먹었다.

내일의 할 일: 중고서점에 팔 책들을 서둘러 읽기.



 

Posted by days4tripper
52016.03.28 04:24






1

2014년 12월 말 즈음에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면허증을 신분증으로만 써오다가 드디어 운전 연수를 시작했다. 방문 운전 연수를 찾아봤고, 다행히 동네 쪽에 사시는 좋은 여자 선생님을 만나 10시간의 연수를 마쳤다. 선생님 차는 우리집 차와 달라서 추가로 3회, 6시간 정도 우리집 차를 가지고 연수를 더 받기로 했다. 

처음 연수를 받던 날, 운전대를 거진 1년 만에 잡았는데 얼마 연습을 하지도 않고 바로 도로에 나서서 팔당댐까지 다녀왔다. 날이 날인지라, 전날부터 겁이 나기도 하고 걱정이 많이 됐는데 생각보다 너무 수월하게 운전을 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 (아, 물론 첫 날이어서 거의 직진만 했습니다만) 무엇보다 선생님이 '폭풍칭찬형'이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운전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날에는 동네 쪽에서 좌회전, 우회전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다. 둘의 가장 어려운 점은 어느 시점에 얼마 만큼 핸들을 꺾느냐 하는 것. 좌회전은 커브 곡선이 나올 때 핸들을 꺾고 멀리 노란 선을 보면서 핸들을 돌리라고 하셨지만 나는 계속 감이 안 올 뿐이고... 하지만 이 문제는 점점 익숙해지게 돼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첫 날과 둘째 날은 각각 2시간 연습을 했고 셋째 날과 넷째 날은 3시간씩 시간을 잡아서 멀리 다녀오는 것으로 정했다. 셋째 날은 판교를 다녀왔다. 막 터널도 지나가고 꼬불꼬불한 비탈길도 내려와보고 고속도로까지 다녀오면서 여러가지 길에서 단련을 했다. 처음엔 선생님이 옆에서 수다를 떨어도 나는 막 너무 무섭고 앞에도 봐야 되고 대답도 해드리긴 해야겠지만 정신이 너무 없어서 그에 대한 대응을 잘 못했었는데 이 날에서는 운전하며 수다가 가능해짐! 대다내! 무엇보다 운전이 익숙해지고 늘고 있다는 실감이 들어서 너무 재미있어졌다.

대망의 넷째 날은 무려 '홍대'에 진출하기로 했다. 먼저 올림픽대로를 타고 가다! 올림픽대교를 건너서! 강변북로를 타고! 홍대에 도착! 하... 정말 저 느낌표를 찍은 것처럼 그 길들을 내가 운전해서 가고 있다는 것에 혼자 넘나 감격해버린 것... 언빌리버블!!!!!하고 속으로 외치며 운전했다. 것도 모자라서 홍대에서 광화문을 거쳐! 종로를 지나! 동대문을 건너서! 그러니까 무려 도로가 좁고 버스가 막막 들이대고 택시가 깜빡이 안 켜고 앞으로 들어오는 그 시내를 지나서 집까지 왔던 것이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내가 너무나 멋있어 보였던 순간의 1위를 차지할 만한 일이었다. 

원래 처음에 약속한 10시간을 채웠지만 아무래도 차가 달라지면 엑셀이나 브레이크를 밟는 감도 다르고, 아직 주차에 자신이 현저히 없었기에 추가 수강을 할 예정이다. 주말에는 아빠 동승 하에 1시간 정도를 또 연습했다. 아직 여전히 겁나는 부분들이 있지만 마냥 쫄지는 않는 상태가 되었다. 얼마쯤 더 연습하면 혼자 운전을 해도 무섭지 않을까. 얼마나 더 숙련이 되어야 엄마를 태우고 경주나 전주를 갈 수 있을까.


2

전에도 잠깐 썼지만 브런치에 매거진을 연재하고 있다. '취미는 이직 특기는 퇴사'와 더불어 하나의 매거진을 더 만들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와 함께 편지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하는 매거진 '아직 깨어 있는 너에게'. 혼자서 글을 쓰는 것보다 훨씬 덜 고독하고 동기부여도 되고 으쌰으쌰 기운이 난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많이 읽어주시면 기쁠 것 같다. 구독도 해주시고, 라이킷도 눌러주시고 공유도 막 좀 해주시긔....


취미는 이직 특기는 퇴사 ▶︎ https://brunch.co.kr/magazine/bethewhitehand (네, 주소가 '백수가 되자'입니다)

아직 깨어 있는 너에게 ▶︎ https://brunch.co.kr/magazine/toyoufromme


그리고 앞으로 2개의 매거진을 더 만들 예정인데, 언제 오픈하게 될지는... 후후


3

위의 매거진들을 쓰느라 백수일기를 쓰는 것이 더욱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하루 외출하면 3일을 쉬어야 하고, 글 한 줄 쓰려면 2시간은 딴짓으로 로딩해야 하는 연비꽝인 나놈. 하지만 백수일기를 놓치기엔 이게 내게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라서. 자주 쓰진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쓰기는 써보겠습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블로그에 백수일기를 쓰는 톤 및 자세와 브런치 매거진을 쓰는 그것과는 꽤 많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보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지 싶기는 한데, 브런치는 아직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있는 기분. 점점 나아지겠지요.


4

힘 주는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난 것. 목디스크가 있기도 하지만 나는 원래 뭔가에 집중하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늘 목과 어깨 통증에 시달린다. 평소 어깨에 힘을 잔뜩 주는 일이 많다는 이야기. 몇 해 전에 수영을 배울 때도 어깨가 잔뜩 올라와 있다고, 그래서 잘 안 나가는 거라는 지적을 들었다. 헬스를 했을 때도, 요가를 할 때도 어깨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운전 연수를 할 때도 선생님이 "브레이크도 잘 밟고, 다리는 참 잘 하는데 손이 문제네. 손목에 힘을 좀 빼면 나아질 거예요."라고 하셨다. 운전을 하며 갑자기 차가 많아지거나, 다리 위에서 커브를 돌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잔뜩 올라가서 힘을 주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그 뒤로는 내가 힘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의식적으로 힘을 빼려고 했다.

문득 '힘을 빼라' 어쩌면 이게 인생의 비결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애써 힘을 주었던 일들은 별로 잘 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지도 않고. 그러쥐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들은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버렸고, 힘을 빼고 받아들였던 것들은 예상 외로 내게 좋은 경험을 안겨줬었다. 악착스럽지 못한 나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르겠지만, 내 경험들의 결과는 그랬다. 


5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된 지 다섯달 즈음 지나니 쉴 만큼 쉬었고 진짜 뭔가를 좀 해보자,는 마음이 든다. 계절적인 영향도 크고. 허약한 마음이 또다시 무기력에 지지 않도록 잘 보듬어야지.




오늘의 잘한 일: 브런치 매거진 발행

오늘은 반성: 또 소화제를 먹은 것

내일의 할 일: 운전 연수 




Posted by days4tripper
12016.03.27 15:59






우리는 이제 매화가 피었다고, 산수유가 노오랗게 열렸다고, 목련이 활짝 벌어졌다고 전화하지 않는다. 꽃의 소식은 듣지 않으려 해도 들려오는데, 당신의 소식은 사방을 헤매고 다녀도 들리지 않는다. 서둘러 온 꽃 소식이 반갑지가 않다.



Posted by days4tripper